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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2회.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3회.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지난해 여름은 서늘했고 섬뜩했다. 몸에 칼로 ‘노예’라는 글씨를 새긴 여성과 기괴한 자세를 취한 알몸의 여아들. 신상정보는 서비스로 제공됐고 “강간하자”는 말은 안부 인사처럼 오고 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 살색 가득한 지옥이 한뼘 모바일 속에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n번방이었다.

지난해 정부는 불법영상물을 유통하던 웹하드를 뿌리 뽑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세상은 온갖 단톡방으로 시끄러웠고, 불법영상물에 대한 분노로 여론은 터질 것 같았다. 궁금했다. 당국의 엄포에 그들은 정말 멈췄을까. 싸고 편하고 자극적인 ‘놀이’가 웹하드 몇개 차단했다고 정말 중단됐을까. 그들은 멈춘 게 아니었다. 잠시 흩어졌을 뿐이었다. 범죄자들은 이내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냈다. 웹하드를 떠난 이들이 모여든 곳이 있었다. 신분노출 위험이 없는 최상의 보안 시스템. 텔레그램이었다.

몇번의 우여곡절 끝에 n번방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n번방 문이 열리고 고작 몇분 만에 깨달았다. 더이상 취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죽고 사는 문제였다. 텔레그램 특성상 증거는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경찰을 찾아갔다. 채증한 자료를 제공하면서 수사를 촉구하고 범인검거를 도왔다. ‘텔레그램 n번방’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대학생 두 명이 집요하게 파헤쳤고 국민일보가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악몽처럼 끔찍했던 텔레그램 n번방 잠복기. 그 6개월간의 이야기다.

※n번방 사건: 지난해 초부터 텔레그램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 착취 사건으로 피해자는 주로 미성년자다. 피해자를 ‘노예’라고 부르며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한다. ‘갓갓’이 시초였다. 그는 1번방부터 8번방까지 채팅방 8개(일명 n번방)를 만들었다. 갓갓은 지난해 2월 자신의 방을 ‘와치맨’에게 물려주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와치맨은 그해 9월 잠적했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비슷한 형태의 방이 물밀 듯 생겨났다. 현재 ‘박사’의 방이 가장 악랄하다.

n번방을 만나다

성착취 문화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지난해 초. 음란물을 주고받는 사이트 ‘AV스눕’에서 의문의 링크를 발견했다. 텔레그램으로 연동되는 경로였다. 전화번호와 이름만 입력하면 가입이 가능했다(가입 후 번호는 비공개로, 이름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잠복에 돌입했다.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방 중 와치맨이 관리하는 ‘고담방’이 메인이었다. 총 8개로 구성된 n번방에 입장하는 첫 관문이었다. 잠입 당시 고담방에는 20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여기서 바로 n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담방에서 파생된 방으로 넘어가 인증을 거쳐야만 n번방 링크를 받을 수 있었다.

그해 7월 30일 기준으로 고담방에서 파생된 방은 4개였고 총 7000여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n번방에 참여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와치맨 혼자 관리하기는 역부족 같았다. 매니저를 고용해 권한 일부를 위임한 듯 보였다. 고담방과 파생방이 그저 단순한 관문은 아니었다. 잠복을 하며 파생방 한 곳에서 직접 본 음란물만 3000개가 넘었다. 상업적으로 촬영한 포르노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아동을 강간하는 영상물 같은 불법촬영물이었다. 음란 메시지는 하루 동안 보통 1만5000여건이나 오고 갔다. 자신이 소유한 음란물을 올리지 않거나 성희롱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강제퇴장을 당했다. 특히 직접 찍은 불법촬영물은 값을 잘 쳐줬다. n번방 프리패스 티켓과 같았다.

링크를 받는 방법은 음란물 공유 외에도 다양했다. 방장의 성향이나 그날 그날 이벤트에 따라 달라졌다. 공유할 만한 음란물이 없었던 취재진은 운이 좋게도(?) 5시간 만에 n번방 링크를 얻을 수 있었다. 대화를 많이 했다간 신분이 들통날 것 같아 망설이던 사이, 당시 방장이 비교적 너그러운 제안을 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여아 사진으로 프로필을 변경하면 입장시켜주겠다’는 공지를 내렸다. 서둘러 변경하고 링크를 받았다.

n번방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엔 갓갓의 ‘노예’들이 있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중학생쯤으로 보였다. 개처럼 짖고 있는 아이들,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위를 하는 영상은 기본이었다. 영상마다 성기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지시에 따라 영상물을 직접 촬영해 보내는 것 같았다. 몇개를 보고 나니 현실감각이 사라졌다. 그날 밤 지옥 같은 꿈을 꿨다.

n번방 창시자인 갓갓은 지난해 2월 n번방 권한을 모두 와치맨에게 넘기고 텔레그램 세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갓갓의 위세는 와치맨과 방에 참여하는 관전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갓갓이 만들고 와치맨이 운영하던 n번방은 총 8개다. 각 방마다 노예는 3~4명이었고 합하면 20~30명 정도였다. 이 방에서는 “이정도 되면 누구 하나 죽는 애 나와야하는데 죽었다는 소리 못 들어봄ㅋ 한 명만 죽어도 본보기 오질텐데 경찰들은 매일 처놀기만 하고” 같은 조롱의 말들이 오갔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 노예가 된 아이들

노예들은 왜 꼼짝없이 당하고 있었을까. 아이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은 갓갓의 입을 통해 전해졌고 와치맨이 이를 널리 알렸다. 설명을 종합해보면 범행은 주로 트위터에서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수위가 높은 게시물을 올린 미성년자를 선별한 뒤 메시지를 발송했다. 경찰을 사칭하면서 겁을 주는 방식이다. 갓갓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보내준 링크에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고 제안했고 ‘아니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신상정보를 내놓으면 그 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됐다.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가 전신사진, 가슴이 드러나는 사진, 상의 탈의 사진 등을 요구했다. 어느 순간 멈칫하면 그 사이 신상정보로 알아낸 SNS 친구 목록을 캡처해 보냈다. ‘주변에 알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사색이 됐다. 그렇게 노예가 됐다.

n번방의 놀이는 온라인 성착취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노예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냈다. 이날은 취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 중 하루였다. 잠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해 여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숙박업소로 추정되는 방에 갇혀있었다. 이 방에 성인 남성이 들어가 아이를 강간했다. 영상은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채팅방은 ‘이게 바로 그루밍이지’라는 환호로 떠들썩했다. 영상이 뜰 때마다 캡처해 경찰에 넘겼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당하고 있을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죄책감과 구역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며칠간 넋이 나갔다.

엽기물을 사랑한 박사…진짜 악마를 봤다